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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최용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평가를 위한 짧은 회고'

발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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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평가를 위한 짧은 회고

작성:최용주 2017.11.29

 

망각하기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나 아렌트

 

광주항쟁과 80총학

 

1980년의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는 1980410일에 결성되어 1980517일 자정에

와해되었다.겨우 40일 동안 활동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80총학이라고 약칭하고 있는 이 조직은 유신체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숙성되어 온 전남대학교 학생운동의 역량이 총집결되어 태동된 상징적 산물이면서, 70년대 학생 중심의 반독재/민주화 투쟁이 1980518일 이후 시민에 의한 조직적 항쟁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촉매의 역할을 담당했던 조직이다.그러므로 전남대학교 80총학 활동의 정리와 평가는 광주항쟁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성격과 의의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데 있어서 빠져서는 안되는 작업이다.

 

7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은 반독재 투쟁의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국민들의 폭넓은 지지와 연대를 끌어내는 데에는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한계가 잘 드러난 사건이 이른바 1980515일의 서울역 회군이다. 수만의 학생들이 서울역에 모여서 비상계엄 해제와 전두환 신군부의 퇴진을 외쳤지만,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결국 퇴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이 한계는 18년에 걸친 권위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 억눌려있던 한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한계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어떤 식으로든지 시민사회가 그 잠재적 열망을 드러내는 계기를 조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이러한 대중성을 갖추는 데 실패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확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광주는 달랐다.

 

80총학이 주도한 514일 도청 분수대 민주화성회는 박관현의 대중적 인기와 총학팀의 치밀한 준비에 힘입어 처음부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서 열렸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이 시위를 멈추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때에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열린 516일의 횃불집회에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동참하였고, 이 자리에서 광주시민들은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대한 잠재적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광주 시민사회의 이러한 역동적인 에너지는 518일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을 계기로 10일에 걸친 자치공동체를 이루었던 장엄하고 애국적인 시민저항의 자양분이 되었다. 517일 비상계엄이 확대되고 전두환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다른 지역은 두려움과 침묵의 상태로 퇴행하였는데,왜 유독 광주만 조직적인 항쟁으로 발전했을까?여기에는 여러 설명변수들이 있다.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유혈 폭력,지역차별,김대중의 체포,호남 특유의 저항정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시민들의 잠재적인 분노가 집단적으로 폭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지적이고 감성적인 변수는 국가폭력에 대한 불굴의 시민저항이자 민주화운동으로서 광주항쟁의 참된 의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사회운동사적 측면에서 광주항쟁은 1970년대 엄혹한 유신체제 하에서 학내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학생운동과 재야 중심의 반독재/민주화 투쟁이 시민사회 및 기층민중과 연대를 형성하면서 그 외연을 시민운동(civilmovement) 수준으로 확대했던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그리고 80총학은 이러한 연대를 가능케 했던 조직적 매개기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80총학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80총학에 대해 갖는 자긍심의 발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우리의 긍지는 긴 회한과 고통스러운 자책 그리고 억제하기 힘든 슬픔과 겹칠 수 밖에 없었다.

 

전사(前史)

 

80총학의 태동은 박정희의 사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1226일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정세 뿐만 아니라 학생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엄청난 혼란을 안겨주었다.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한 것은 확실한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했다.박정희 사후 계엄령 발동으로 각종 사찰과 감시가 더 강화되어 활동은 위축되었으나,유신체제의 종말로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초기,

그러니까 12.12사태 전까지는 대체적으로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우세했는데, 이것은 객관적인 정세판단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이 가져다 준 막연한 희열에 기댄 것이었다.

11월 중순쯤 무등산장 근처 민박집에서 일단의 학생들이 모였다.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시위모의사건인 인성다방 사건상담실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서광주경찰서에 연행되었다가 10.26 이후 훈방으로 풀려난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박정희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이들은 이제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향한 피할 수 없는 도정에 올라섰으며, 여기서 학생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학도호국단의 폐지와 총학생회의 부활이 선행되어야 할 것임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소규모 서클이나 비공식 지하조직 중심으로 전개되던 학생운동이 학생회 중심으로 제도화”, “규모화”, 공식화되어야 할 필요를 공감하고 있었다.석방되면 무등산장 근처 민박집으로 만나서 총학생회 부활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잠정적으로 약속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무등산에서 만났고, 그 자리에서 광천동 들불야학 강학인 박관현을 총학생회 회장후보로 잠정적으로 추대하였다.물론 이 추대과정은 그 전에 여러 활동가 그룹과 선후배

간의 암묵적인 조율을 거친 것이었다.그리고 총학생회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 및 전략은

연말까지 차분히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0.26 이후 정치일정은 매우 불투명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1212일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길었던 전두환의 쿠데타가 시작되면서 이 나라에 또 다시 군부독재 망령의 기운이 돌고,직선제 개헌 일정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재야는 힘이 없었으며,김대중은 아직 복권이 되지 않았고,야권은 분열되어 있었으며, 독재의 후광에 짓눌린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실권이 없는 듯 했다. 과도정부를 조종하고 있는 숨은 권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확실치 않았다. 이런 과정을 목도한 학생들과 일단의 운동가들은 1980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총학생회 부활 전단계로서 학원자율화운동부터 시작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은 197912월 하순에 학원자율화 학생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새학기에 다가올 총학생회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여러 예비작업을 추진하였다. 각종 공청회, 공술회 등을 열어서 학원자율화를 위한 제도 정비의 방향을 모색했으며,학생회 부활 일정 등을 토론하였다.

 

무엇보다도 유신체제 하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옥죄고 있었던 각종 통제와 감시 장치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가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학생들의 의사를 모아서 논의한 사항은 즉각적으로 공개하여 많은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고,대학당국과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나갔다. 학자추위 주도로 학내 자치기구로 여학생회와 서클연합회를 먼저 설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학생회 조직체계 및 거버넌스 등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여러 논의를 거친 다음, 학생회 조직은 대의민주주의 조직체계를 따라서 집행기구인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그리고 의결기구인 대의원총회로 이원화하여 견제와 균형의 자치 거버넌스를 갖는 구조로 가져가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전국의 대학들도 대부분 이런 거버넌스를 갖는 학생회를 구상하고 있었다.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의 활동으로 총학생회 구성 및 선거일정이 공고되었지만 학생회를 학생운동의 전위조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당선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왜냐하면 학내에는 운동권과는 다른 사고와 이념, 행동양식을 가진 다양한 그룹들이 있었고 이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학원 자율화와 민주화의 취지에 역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본질적으로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화된 학생운동은 대중성과 보편성에 입각해야 하고,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내에 편재하고 있는 다양한 사고들과 이질적인 집단들을 포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대중성의 확보는 당시 운동권에게는 가장 절박한 전략적 당면과제였다.

 

또한 당시 학내 운동권 집단도 이념적, 전략적 지향점이 전부 동일하지는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종속이론이나 모리스 돕과 같은 좌파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급진주의 계열에서부터 서구형 다원주의를 따르는 온건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했으며,사회과학 독서서클에서부터 문화운동패, 야학집단, 그리고 농민운동그룹 등 여러 형태의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민중이라는 다소 모호한 계급적 개념이 유행처럼 회자되었으며,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과 대의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자 그룹들도 여기저기서 활동하고 있었다.학생들이 탐닉하는 독서목록 역시 파울로 프레리,프란츠 파농,사르트르에서 이영희, 함석헌, 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 다양한 집단들은 유신체제 몰락 이후 민주화, 인권신장, 정치발전이라는 기본 목표에 대해서는 다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정세판단과 추진전략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였고,이러한 이질성은 때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분열과 다툼의 여지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학생들은 학내의 이러한 이질성을 포용하면서도 강력한 선동력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을

찾아야 했으며,학내의 다양한 세력들을 학생회의 우산 아래에 둘 수 있는 조직체계를 구비하고 있어야 했다. 총학생회 부활을 추진했던 운동권 집단은 일찍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박관현을 총학생회장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운동권 학생들은 박관현을 학생회장 후보로

내세우고 즉각적으로 총학준비팀을 구성하였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면서 총학준비팀은 학생운동의 전면에는 나서지 않았으나 의식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인물들을 보좌진으로 대거 섭외하였다. 운동권 특유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 학생들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선거운동 과정을 통해서 박관현을 중심으로 기존의 운동권 집단과 비운동권 학우들이 전략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하였고,학원 자율화와 민주주의 쟁취라는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조직체계는 점진적으로 그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40일의 싸움

1980410일 박관현을 회장으로 출범한 총학생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과제는 총학생회라는 공개조직을 통한 정치투쟁의 대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있었다. 총학생회는 운동권의 전유물도 아니며,학생회의 급진적인 투쟁노선은 활동의 인적 기반인 학우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데 한계를 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쟁의 당위성과 추진의 대중성의 간극은 의외로 컸다.

 

특히 비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진출했던 의결기구 대의원총회와 집행기구인 총학생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총학생회의 거버넌스는 처음부터 총학생회의 부활을 주도했던 운동권 세력의 의도대로 운영될 수 없었다.그리고 원칙적으로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총학생회는 세가지 전략을 세웠다.첫째는 최규하 정부와 전두환 신군부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급진적인 대외투쟁은 당분간 전략적으로 자제하고, 학원 민주화와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들을 제거하는 활동에 주력하여 학생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학생회는 이 운동을 학원내 구잔재철폐 운동이라고 내부적으로 정리하였다.

 

둘째는 총학생회 내에 비공식 조직으로 비밀기획팀을 꾸려서 앞으로 필연적으로 도래될 수 밖에 없는 대외 정치투쟁에 대비하는 전략과 전술을 기획하도록 하였다. 비밀기획팀은 학내의 다양한 운동권 집단들이 중심이 되어 꾸려 나가되,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회 공식간부진과 확대전략모임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방향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세째는 서클연합회 활동을 강화하여 투쟁의 전면에 나설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어용교수 퇴진 운동과 병영집체훈련 거부 투쟁이 대표적인 학내민주화 운동이었다. 국내정세가 급변하게 되는 5월 초순까지 1달 동안의 학생회 활동은 대부분 이 두 현안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영집체훈련 거부 투쟁은 전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일제히 전개되고 있었으나, 어용교수 퇴진 운동은 일부 사립대학의 사학비리 투쟁의 경우를 제외하면 국립대학으로는 전남대가 유일했다.어용교수 문제는 복적생 그룹이 3월말에 어용교수백서를 발간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하였으며,이를 총학생회가 넘겨받아 도서관을 점거하면서 어용교수 퇴진 농성을 전개하였다. 문리대 학생회를 중심으로 어용교수 연구실 출입문을 못으로 봉쇄하는 정침식과 어용교수 장례식 퍼포먼스도 열었다.

 

별다른 진척이 없자 총학생회는 도서관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어용교수 퇴진 운동은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무엇보다 먼저 학자로서 자질이 없고 권력에 기대어 출세만을 바라는 교수들의 퇴진 운동을 벌임으로써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광범위한 신뢰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학생운동이나 정치발전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이 문제만큼은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탄탄한 동료의식과 연대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나아가 학생들은 어용교수 문제가 교수 개개인의 품성과 자질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대학사회를 비롯하여 이 나라 모든 부문에 착근된 권위주의 유신 독재의 구조적 소산임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병영집체훈련 반대 투쟁은 반공과 안보를 핑계로 대학을 병영화시켜서 학생들을 군사주의적 통제체제 하에 가두어 놓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에서 비록 학내투쟁이긴

하지만 긴장도가 매우 높았던 투쟁이었다.자칫 잘못하면 계엄포고령이 아니라 반공법 등에도 저촉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그러나 병영집체훈련 거부 투쟁은 이미 전국의 각 대학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고,대학 간 연대투쟁의 열기가 가장 높았던 사안이었다.비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도 교련이라고 불렸던 대학내 군사훈련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았는데, 학생회가 주최가 되어 교련교육 반대를 선언하자 이러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대규모 학내 집단행동으로 발전하였다.

 

병영집체훈련 반대 투쟁 역시 학생들의 비판적 사회의식을 고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어용교수 퇴진 운동과 병영집체훈련반대 투쟁 과정을 통해서 총학생회는 자연스럽게 당시 시국에 대한 견해 및 정치적 요구사항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시작하였다. 총학생회는 4.19기념식에서 최초로 시국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정치발전을 대외적으로 요구했다.

 

총학생회는 4.19기념 성명서를 통해 계엄령 해제,정치발전 일정 공개,민주인사 석방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각 언론사에 배포하였다. 4.19성명서는 앞으로 전개될 학생회 정치투쟁의 개략을 대외적으로 밝힌 첫 문건으로 기록되었다.그러나 이 단계에서 학생회의 입장은 여전히 선언적이며 원칙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구체적인 행동지침이나 투쟁 방향에 대한 제시는 없었다.

 

학내의 분위기가 아직은 덜 성숙되었다고 판단했고,투쟁의 대상은 여전히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최규하 정부를 조정하고 있었던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아직은 막후에 있었다.

 

총학생회는 5월 초부터 학내민주화 문제에서 선회하여 본격적인 대외정치투쟁에 나섰다. 어용교수 문제와 병영집체훈련 거부 투쟁이 일단락되면서 동력을 학교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며 학내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학생회는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총학생회는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정권의 실세로 부상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내 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은 이제까지 말로만 떠돌던 신군부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으며,결국 우리가 타격대상으로 삼아야 할 주적은 최규하 과도정부가 아니라 신군부 쿠데타 세력임을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총학생회 기획팀이 그렇게 판단했고,그 동안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수도권 대학 총학생회의 분석도 마찬가지였다.결국 총학생회는 58일부터 민족민주화성회를 교내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14일까지 계엄령을 해제하고 정치일정을 밝힐 것을 최규하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리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교문 밖 가두시위에 나설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물론 이런 투쟁 일정은 여타 주요 대학들과 사전 협의하여 조율된 것이었다. 58일 이후 계속해서 열린 교내 민족민주화성회는 그간 수개월에 걸친 학원자율화 투쟁과정에서 체득한 연대의식과 단체행동의 동력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던 감동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다.마치 꽉 막힌 병 속의 탄산가스가 일시에 터지듯 학생들은 여태까지 억제해 온 시국에 대한 불만과 민주화를 향한 자신들의 열망을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발산하였다. 여기에 박관현의 탁월한 연설능력이 더해져서 학내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풍선과 같았다.교내집회는 긴장과 두려움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무슨 축제를 보는 듯했다. 학생들은 동토의 나라에 18년에 찾아온 정치적, 사회적 을 만끽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진짜 봄이 올 것으로 믿었다.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시작하면서 학생회는 앞으로 닥칠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이에 대응 가능한 모든 전술을 설계하고 심지어 도상연습까지 했다. 총학생회가 민족민주화성회 취지문에서 밝힌 유명한 문구처럼,“사태는 심각하고 추세는 불확실하며 낙관은 요원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언제든지 정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있었고,야권과 재야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시민사회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18년간의 독재체제 하에서 체화된 두려움이 쉽게 극복되지 않은 탓이었다.

 

이런 정세를 감안한 총학생회는 시국이 이대로 가면 학교 밖으로의 진출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학생들만의 교내시위로는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을 얻을 수 없으며,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지 않으면 계엄령 해제와 정치발전은 요원할 것으로 생각했다.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학내 주요 운동권 그룹들로 구성된 비밀기획팀은 민족민주화성회 첫날부터 교외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시내의 각 파출소, 계엄군 초소, 차단로 등을 파악해서 집회의 최종 목적지인 도청 앞 분수대 광장으로 집결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했다. 교문 밖으로 진출하게 되면 각 단과대별로 분산해서 계엄군과 경찰의 방어력을 약화시킨 다음 금남로 분수대 앞에서 집결하는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휴교령이 내릴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미리 세웠다.휴교령이

내릴 경우 교문 앞에 집결해서 대오를 정비한 다음 금남로로 행진한다는 계획은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민족민주화성회를 통해 유신 부활 세력 및 최규하 과도정부와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민족민주화성회의 극적인 순간은 514일에 찾아왔다.교내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데 갑자기 일군의 학생들이 정문을 돌파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한 것이다.원래 교외집회는 15일부터 열기로 했는데 열기를 억누르지 못한 학생들이 경찰이 지키고 있는 교문을 뚫고 시내로 진출해버린 것이다.교문이 뚫리자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학생들이 늘어났고 수많은 학생들이 일거에 금남로를 통해서 도청 앞 분수대로 집결하였다.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오자 경찰은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분수대 앞으로 모여들면서 근처의 시민들도 속속 합세하기 시작하였고 조선대와 광주교대 학생들도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분수대 광장은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 찼다. 금남로 제1차 민족민주화성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그리고 분수대 광장에 올라간 박관현은 제가 전대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사자후를 시작하며 일순간에 청중들을 압도했다. 1980514일은 박관현이 광주의 아들로 입양되는 날이었으며, 학생들과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라는 공간에서 처음 조우하고 연대하여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대한 열망을 서로 확인하는 경이로운 날이었다.도청 앞 분수대광장에는 일순간 해방의 열기가 가득했다.

 

515일에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거쳐서 제2차 민족민주화성회를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개최하였다.경찰과 사전에 합의를 거쳐 평화집회를 하기로 약속하였고 그 댓가로 전날 연행된 학생들이 풀려나기도 했다.놀라운 것은 그간 지켜만 보던 교수들이 대거 참여하여 대열의 맨 앞쪽에 서서 도보행진을 한 것이다.교수들의 참여는 시위가 격화될 경우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인적 완충장치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훌륭한 유인책이 되었다.15일 분수대 집회에서는 그 전날 보다 배가 더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었는데,상당히 많은 시민들은 14일 집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박관현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515일의 열기와 희열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들이 더 이상 진출하지 않고 갑자기 시위를 중단해버리고 철수해버린 것이다.이른바 서울역 회군사건이다. 16일 집회를 준비하던 총학생회에게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배신감도 들었다. 15일 밤 총학생회와 기획팀 내에서는 수많은 격론이 오고 갔다.최규하 과도정부와 신군부 측에 우리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으니 지켜보자는 측도 있었고, 집회를 계속 해서 끝까지 밀어부쳐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했다.그러던 중 신군부 측의 수상한 움직임들이 감지되기 시작하였다. 공수부대가 서울 외곽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고,15일 밤에는 전남대 인근에서 군부대의 이동이 목격되었다.대책회의를 열던 서울지역 총학생회 간부들이 연행되어 갔다는 소문도 들리기도 했다. 엄청난 긴장과 두려움이 모두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던 그 날 밤, 총학생회는 16일 집회를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그리고 16일 성회는 전두환, 신현확, 최규하 등 이 나라 민주화를 가로막는 적들을 화형에 처하는 횃불집회로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사실 횃불집회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아이디어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까지 격론을 벌이다가 가까스로 결정되었다.

 

516.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이 숨죽이고 있을 때 유일하게 광주에서만 집회가 열렸고,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야간 횃불집회로 이어졌다. 도청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 열기는 횃불의 온도를 압도해버릴 정도였다. 경찰들은 외곽 경비만 담당할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경찰은 이미 그 전날에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제지하지 않겠다고 보장했다. 분수대에는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노동자,고등학생들까지 올라와서 발언을 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그리고 박관현은 비상계엄 해제와 정치발전,전두환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했고,생애 마지막 대중연설을 했다.그의 연설이 주는 감동은 실로 대단했으며 그 선동성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그리고 횃불이 타오르면서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들을 연기 속으로 올려보냈다.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시국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공공의 공간”(public sphere)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박관현은 휴교령이 내리면 즉각 교문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단상을 내려왔다.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517.교정에는 꽃들이 만발했고 하늘은 더 말 할 나위 없이 푸르렀으며,공기는 따뜻했다. 그런데 도서관 앞 광장은 이상할 정도로 적막했고 말 못할 팽팽한 긴장마저 감돌았다.우리는 아마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오늘이 우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 되리라는 것을.그리고 그 날 저녁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몇 개월 후 대부분 상무대 영창에서 다시 만났다.

 

박관현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후

광주항쟁을 상징하는 두 인물인 박관현과 윤상원은 사실 한 몸이었다.박관현의 총학생회장 출마를 마지막까지 강력히 권한 인물도 윤상원이었으며, 학생회장 선거 유세 때 박관현이 입었던 양복은 윤상원의 것이었다.

 

박관현은 윤상원의 양복을 입고 윤상원과 함께 밤새워 토론하며 정리했던 생각을 학생과 시민 앞에서 발표했다.이 한 몸이 517일 자정을 기해서 두 개로 갈라졌다. 한 사람은 긴 잠행의 길로,그리고 또 한 사람은 총을 들고 도청으로 들어갔다.

 

운명이었을까? 그리고 이 둘은 죽음으로 다시 만나서 한 몸이 되었다.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살육하고 있을 때 광주시민들은 도청 앞 분수대에서 애타게 박관현을 찾았다.부모인 광주가 죽어가는데 광주의 아들은 어디로 갔는가?박관현은 부름에 응하지 못했다. 박관현으로 상징되는 총학생회 구성원들 역시 이 부름에 대답하지 못했다.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불을 지펴서 뜨거운 열정으로 일어났던 수많은 동지들은 교문 앞에서,도청에서, 금남로에서 죽고 다쳤다. 그리고 박관현은 옥중에서 단식하다가 죽었다.

 

박관현은 사실 광주항쟁 중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살아남은 우리를 옥죄는 회한과 자책은 오래 갔다.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청춘을 바쳤다는 자부심은 죽은 자 앞에 서면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그러나 자책과 회한으로

낭비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많았으며, 죽은 자들에게 진 빚이 이런 식으로 갚아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바로 깨달았다.광주항쟁 이후 긴 잠행에서 깨어난 우리는 죽은 자의 유업을 잇는 산자의 몫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으며,주저없이 그 일을 했다.때로는 좌절해서 회피하기도 하였으나 곧 제 자리로 돌아와서 서로의 눈을 쳐다봤고 서로를 격려했으며 앞서 간 동지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박관현이 죽고 난 며칠 후 미국 CIA 한국지부는 박관현의 죽음이 가져 올 한국 학생운동의 변화를 분석한 기밀문서를 작성해서 본국으로 보냈다.이 보고서는 앞으로 한국의 학생운동은 박관현 이후로 상징되는 이른바 광주세대”(Kwangjugeneration)가 주도할 것이며 한국의 정치발전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 광주세대가 바로 876월항쟁 세대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우리는,비록 회한이 많은 세대이지만,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광주세대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은 지키고 싶다.

 

주요 일지

1979.11.12 무등산장에서 총학생회 부활 논의 박정희 사망,계엄령

1980.2.14 학원자율화 학생추진위원회 결성 서울의 봄

1980.3.27 복적생 어용교수 백서 발간 서울의 봄

1980.3.31 학자추위 명으로 총학생회 선거일정 공고 서울의 봄

1980.4.9 박관현-이승룡 총학생회장 부회장 당선 서울의 봄

1980.4.10 총학생회 출범 서울의 봄

1980.4.19 총학생회 명의의 첫 시국선언문 발표 서울의 봄

1980.5.8 1차 민족민주화성회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

1980.5.14 금남로 분수대 광장 제1차민족민주화성회 전두환 신군부 실권 장악

1980.5.15 금남로 분수대 광장 제2차민족민주화성회 전두환 신군부 실권 장악

1980.5.16 금남로 분수대 광장 횃불집회 전두환 신군부 실권 장악

1982.10.12 박관현 옥중 단식 중 별세 제5공화국

1985.10.12 전남대학교 80총학동지회 결성

1987 박관현열사 기념사업회 발족

박관현평전 발행

1996

박관현장학재단 설립

- 30명 수혜

-지급 장학금 누적액:

158백만

.

2012 박관현열사 30주년 박관현평전 개정판 발행

‘80년 전남대총학생회와 박관현’ 조명 전남대 5·18연구소, 시민집담회 29일 개최

보도자료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보도자료_상단.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542pixel, 세로 133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7년 08월 17일 오후 11:10

보도자료(2017.11.27) 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전남대학교 기획조정처 대외협력과 ☎ (062)530-1131 

 

 

 

 

80년 전남대총학생회와 박관현’ 조명

전남대 5·18연구소시민집담회 29일 개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소장 송한용 · 사학과 교수)가 오는 11월 29(오후 45·18민주화운동기록관(광주 동구 금남로 가톨릭센터) 7층 세미나실에서 시민집담회를 개최한다.

 

전남대 5·18연구소는 ‘1980년 전남대총학생회와 박관현’이라는 주제의 이날 집담회에서 80년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남대총학생회와 박관현 열사의 활동상을 집중 조명한다.

 

특히이번 ‘시민집담회’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관장 나의갑), 관현장학재단(이사장 최영준)과 공동으로 기획했으며기존 집담회보다 더 많은 발표자와 토론자가 참여한 가운데 풍성한 논의의 장이 될 전망이다.

 

이날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평가를 위한 짧은 회고’를 발표하고, 80년 당시 들불야학 학생이었던 나명관 씨가 ‘들불과 박관현’에 대해 발표한다.

 

한편전남대 518연구소는 5·18항쟁에 대한 연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심화·확장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집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문의062-530-3916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별첨: 1. 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평가를 위한 짧은 회고’ 발표 자료

       2. 전남대 5·18연구소 11월 시민집담회 홍보 포스터



김광수 의원, ‘경로당 햅쌀 지원법’ 발의

보도자료

1 -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보도자료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126pixel, 세로 827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7년 11월 01일 오후 5:01

국회의원회관 528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장승배기로 185 2  Tel. 02-784-5970 / 063-237-5337~9

2017. 11. 27()

 

김광수 의원, ‘경로당 햅쌀 지원법’ 발의

정부미만 지원되던 ‘경로당 양곡비 지원법’개정으로 어르신 불만 해결에 앞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로 활동 중인 김광수 의원(전북 전주시 ) 27, 정부미에한정돼 경로당에 지원되던 현행 양곡비 지원제도를 햅쌀 지원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은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의 구입비를 보조할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관리양곡 구입비를 보조할  있도록 하는 조항’이 일반 양곡에 비하여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정부관리양곡만 구입할  있도록 강제하는 측면이 있어,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정부관리양곡만을 구입하여 경로당에 지원할 수밖에 없는 실정으로 경로당 이용 어르신들의 불만이 팽배했다.

 

 이에  의원은 경로당에서 자율적으로 정부관리양곡 또는 일반 양곡(햅쌀 ) 구입을 결정할  있도록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 구입비’를 ‘양곡구입비’로 개정함으로써 자율적으로 일반 양곡(햅쌀 ) 또는 정부관리양곡의 구입을 결정할  있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2 -

 

 김광수 의원은 “평소 경로당을 돌아다녀보면 어르신들이 ‘정부에서 남아도는 쌀을경로당에 떠넘긴다’는 푸념과 함께, 일부 경로당에서는 맛이 없다는 이유로  대신 가래떡을 뽑아먹고 있는 실정이었다”며 “실제로 경로당에 지원되고 있는 정부미는 장마철에도 변질되지 않도록 장기 보관용으로 건조하다 보니 일반미보다 수분 함유량이 떨어져 밥을 지으면 퍽퍽한 것이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원은“고령화 시대에 경로당 이용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경로당에 정부미만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있다”며 “빠른 시일내에 법안이  개정돼 어르신들의 불만이 해결될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3 -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김광수의원 대표발의)

 

 의 안

 번 호

 

 

발의연월일 2017.  11. 27.

    자 김광수의원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현행법은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경로당에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의 구입비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음.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관리양곡 구입비의 보조에 대해서는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경로당에 대하여 일반 양곡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정부관리양곡의 소비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어 오히려 노인 복지를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

  이에 경로당에 대하여 보조하는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 구입비”를 “양곡구입비”로 변경함으로써 경로당에서 자율적으로 정부관리양곡 또는 일반 양곡의 구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안 제37조의21).

법률          

 

 

4 -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노인복지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37조의21항 중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 구입비”를 “양곡(「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을 포함한다구입비”로 한다.

 

      

 

이 법은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5 -

신·구조문대비표

      

      

 

 

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경로당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 구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① ---------------------------------------------------------양곡(「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을 포함한다구입비--------------------------------.

  ② (  )

  ② (현행과 같음)

 

 

 


나주시, 지방세 특별징수분 전자신고 납부방식 집중 홍보

보도자료

 

 

나주시 보도자료

2017년 11월 27일 배포

 

이 자료는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총 사진 1

 

제공부서:세무과제공자:박소영

061)339-7774  팩스:061)339-2810 /이메일: snowflke@korea.kr

 

 

 

 나주시지방세 특별징수분 전자신고 납부방식 집중 홍보

‘위텍스’ 활용한 전자신고 납부 적극 권장  시민 편의 향상 도모

 

나주시(시장 강인규)는 지방소득세 특별징수분을 간편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인터넷 위택스(www.wetax.go.kr)를 활용한 전자신고 납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소득세 특별징수분은 국세인 소득세와 법인세 원천징수세액의10%를 특별 징수해익월 10일까지 관할 시·군·구에 자진 납부해야하는 지방세이다.

 

직접 금융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기존 수기신고납부와는 달리전자신고 방식은 신용카드 및 가상 계좌를 통해 납부가 가능해 시민 편의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주시 관계자는 “납부 대상자의 편의 향상를 위해 시청 홈페이지에 사용뉴얼 및 특별징수의무자 대상 안내문과 매뉴얼을 배포할 계획”이라며“금융기관 방문 없이 신고에서부터 납부까지 원스톱 처리가 가능한 전자납부신고 서비스 이용을 적극 권유한다”고 전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나주시청 세무과 지방소득세팀(061-339-7773)으로 문의하면 된다.


"외국인도 맘 놓고 ‘119신고’하세요" 광주시, 119신고 통역도우미 간담회 열어

보도자료

배포일시

2017. 11. 27.()

담당부서

119종합상황실장  이성연

062)613-8060

상황1담당        문희준

062)613-8081

자료구성

총 1(사진 있음)

보도일시

배포 시부터 보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외국인도 맘 놓고 ‘119신고’하세요

광주시, 119신고 통역도우미 간담회 열어

 

○ 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는 27일 시청 17층 회의실에서 ‘외국어 3자 통역 도우미 간담회’를 열고 외국인의 119 신고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와 3자 통역 시 애로사항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이날 간담회에는 3자 통역 도우미로 영어 3일어 4중국어·독일어·베트남어·몽골어·러시아어 각각 2명 외에 필리핀어인도네시아어 각각 1명 등 7개 언어권 총 19명과 119종합상황실 소방공무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 3자 통역 도우미들은 “응급상황 시 접수 초기부터 해당 언어를 제대로 구분해 통역도우미에게 배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심폐소생술 교육응급상황 시 효과적 대응 요령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광주지역 외국어 3자 통역도우미는 현재 10개 언어권 41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광주시에 거주하거나 여행 중인 외국인들이 119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주고 있다.

 

○ 이성연 119종합상황실장은 “광주시는 2019년도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여러 국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외국인들이 불편없이 119에 신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외국인의 119신고 처리 현황을 보면 2014년 10건에서 2015광주하계U대회가 열린 2015년에는 70, 2016년 14, 2017년 10월까지 13건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

광주시, 2017년 우수중소기업인 및 기술장 수여

보도자료


배포일시

2017. 11. 27.()

담당부서

기업육성과장   김기숙

062)613-3850

기업정책담당   소진호

062)613-3860

자료구성

총 5(사진 있음)

보도일시

배포 시부터 보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광주시, 2017년 우수중소기업인 및 기술장 수여

- 우수중소기업인 5명에 경영안정자금 한도증액․이차보전 추가  혜택

- 기술장 5명에 장려금 매년 200만원 3년간 지급

 

○ 광주광역시는 27일 시청 3층 비즈니스룸에서 ‘2017년 우수중소기업인 및 기술장 시상식’을 열고 ()링크옵틱스 최용원 대표 등 기업인 5명과 기아자동차(광주공장 강성진․송성식 씨에게 상을 수여했다.

 

○ 우수중소기업인은 지역중소기업 중 우수한 기술력으로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한 중소기업인을 선정하며기술장은 지역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며 기술인중 신기술 개발원가절감 등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기술인으로 해마다 선발하고 있다.

 

○ 올해 우수중소기업인상으로 ▲()링크옵틱스 최용원 대표 ▲㈜파워텍 이구선 대표 ▲()엠텍정보 정성철 대표 ▲()삼각에프엠씨 김봉두 대표 ▲㈜명신메디칼 손종기 대표 5명이 선정됐다.

 

○ 기술장에는 ▲기계․금속분야 기아자동차(광주공장 강성진․송성식 ▲전기․전자분야 삼성전자(한남진 ▲화학분야 금호타이어(허남근 ▲기타분야 매일유업(송근종 등 5명이 선정됐다.

 

○ 선정된 우수중소기업인에게는 경영안정자금 한도증액과 추가 이차보전지방세 세무조사 유예여성고용환경개선자금중소기업청년인턴 우선 지원 등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 기술장에게는 사내 규정에 따라 승급가점포상금국내외 교육연수인사고과 반영사내강사 지정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되며기술장려금으로  매년200만원씩 3년간 총 600만원을 지급한다.

 

 

○ 수상내역을 보면,

   우수중소기업인 수상자인 ㈜링크옵틱스 최용원 대표는 피부치료기통증완화 의료기기로 2017년 2월 첨단기술 기업 인증을 획득, 2016년 국제광산업전시회 우수상품 산업통상부 장관상을 수상했다민군 기술적용 연구사업을 진행하여 매출증대 및 신규 제품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 ()파워텍 이구선 대표는 주생산품인 금형용 가스 스프링과 프레스 생산으로 매년 20~30% 매출성장과 고용창출에 힘쓰며 해외 15개국에 대리점을 개설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엠텍정보 정성철 대표는 컴퓨터 제조범용소프트웨어 개발 등으로 2009년부터 광주시가 추진하는 ‘사랑의 그린 중고 PC 캠페인’에 참여해 총 5770여 대의 PC 정비 및 보급으로 정보 소외계층에게 정보화기기 활용 기회를 제공하는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삼각에프엠씨 김봉두 대표는 음식품 자동화 기계만을 전문으로 생산해오면서 2012년 중국에 700만불 상당의 홍삼제조설비를 수출했으며 2016년 무역의 날로 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했다.

 

○ ㈜명신메디칼 손종기 대표는 의료용 온열기의료용 찜질기가 주 생산품으로2005년부터 북유럽 시장부터 해외바이어 발굴에 힘써왔다. 2016년 25만여 불 수출 실적을 달성하고조달청 우수제품 인증을 통해 공공조달 시장에 진출해 매출액과 고용 인원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 기술장 수상자인 기계․금속분야 강성진 씨는 테일 게이트 글라스 작업방법 개선 등 표준화 실적 8건으로 130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으며질분임조 전국대회 금상을 수상하는 등 품질개선 활동에 기여했.

 

○ 송성식 씨는 도장라인으로 이송하는 차량에 부착하는 스틸바코드 박리장치 설치 등 공정개선으로 안전사고 예방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품질분임조 그룹장으로 활동하면서 공정 개선 16품질개선 39건으로 127000만원의 비용을 절감했.

 

 

○ 전기․전자분야 한남진 씨는 에어컨 열교환기 공정설비 종합효율 향상 등 10건의 공정 개선으로 181000만의 비용을 절감했다국가품질명장으로 사내외 전문강사 활동을 통해 품질혁신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광주광역시 품질명장 지회장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품질경영 활동에도 기여했다.

 

○ 화학분야 허남근 씨는 트레드 공급대 가이드롤 설치 개선 등 공정 개선 15건과 품질개선 16건으로 550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하는데 기여하고해병대전우회 광주광역시 연합회 활동을 통해 교통봉사와 광주천 정화 등 사회봉사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 기타분야 송근종 씨는 보일러 급기온도 상승을 통한 LNG 사용량 절감 등 공정표준화 19건의 실적이 있고공정개선 33건 품질개선 11건으로 340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며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품질분임조 분임장을 맡아 설비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제품 품질향상에 기여했.

 

○ 광주시 관계자는 “기술혁신과 융합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개발이야말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며 “신기술개발,품질관리 활성화 등 생산성 향상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지역산업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우수중소기업인과 기술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 붙임 우수중소기업인상 수상자 공적기술장 수상자 공적 개요

 

【붙임 1

우수중소기업인상 선정자 공적개요

연번

선 정 자

         

1

 

◦ 2004년부터 ㈜링크옵틱스 운영

◦ 주생산품은 피부치료기 및 통증완화 의료기기로, 2017년 2월 첨단기술기업 인증을 획득, 2016년 국제광산업전시회 우수상품 산업통상부 장관상을 수상함.

 민군 기술적용 연구사업을 진행하여 매출증대 및 신규 제품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중국 등 해외 시장개척활동도 활발함.

㈜링크옵틱스

최용원(50)

2

 

◦ 2009년부터 ㈜파워텍 운영

◦ 주생산품은 금형용 가스 스프링과 프레스 제품으로 단기간 국내외 브랜드 제품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 판매하여 매년 20~30% 매출성장과 고용 창출 및 해외 15개국 대리점을 개설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 기본급의 연간 450% 이내의 경영성과금 지급규정을 두고 있으며 직원의 건강관리를 위한 체력단련실을 운영하고 있음.

㈜파워텍

이구선(58)

3

 

◦ 2009년부터 ㈜엠텍정보 운영

 주생산품은 컴퓨터 제조범용소프트웨어 개발전산장비 유지보수이며2009년부터 광주시가 추진하는 사랑의 그린중고 PC에 참여하여 총 5,770여대의PC정비 및 보급하여 정보소외계층에게 정보화기기 활용 기회 등을 제공

◦ 2017년 5월 제30회 정보문화의 달 행사에서 대통령상 수상

㈜엠텍정보

정성철(46)

4

 

◦ 1990년부터 ()삼각에프엠씨 운영

 주생산품은 홍삼제조설비홍삼가공식품용 기계이며 청사 이래 음식품 자동화 기계만을 전문으로 생산해오면서 2012년 중국에 홍삼제조설비로 7백만불 수출하였으며 2016년 무역의 날에 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

◦ 매년 매출액의 7%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여 중소기업청 경영 대상 수상, 2015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 수상

()삼각에프엠씨

김봉두(67)

5

 

◦ 2000년부터 ㈜명신메디칼 운영

◦ 주생산품은 의료용온열기의료용 찜질기며 2005년부터 북유럽 시장을 시작으로 홍콩스웨덴 해외바이어 발굴에 힘쓰며 2016년 약 25만불 수출 실적을 달성하였음.

◦ 중기부 성능인증조달청 우수제품 인증을 통해 공공조달 시장에 진출하여 매출액 상승산단 미니클러스터 모임을 통한 기술공유로 꾸준히 고용인원이 상승하고 있음.

㈜명신메디칼

손종기(67)

 

 

 

【붙임 2

 

기술장 수상자 공적개요

연번

선 정 자

            

1

기아자동차()

강성진(57)

◦ 1978년부터 39년 8개월 장기근속

◦ 표준화 실적 8, 1억 3천 5백만원 비용 절감

◦  제안 44건을 제안공정개선 11품질개선 33건으로 1억 2천 6백만원 비용 절감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

◦  사내 신입사원 및 현장관리자 교육을 담당하고 사내 제안 분임조활동 심사 및 지도활동 등을 통해 체계적인 인력관리와 품질향상에 기여

2

기아자동차()

송성식(48)

◦ 1993년부터 24년 4개월 장기근속

◦ 표준화 실적 2건으로 17백만원 비용절감제안 45공정개선 16건 품질개선 39건등으로 12억 7천만원 비용절감 효과를 거둠 

◦ 우수한 제안 및 개선등록으로 16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최우수 그룹장에 선정

3

삼성전자()

한남진(53)

◦ 1987년부터 30년 6개월 장기근속

◦ 표준화 실적 11건으로 19억 19백만원 비용절감

◦ 제안 65건 제출공정개선 11건 품질개선 16건으로 1천 123억원의 비용개선 효과를 거둠

◦ 국가품질명장으로 사내·외 전문 강사활동을 통해 품질혁신 활동을 확산·전파함특히 광주광역시 품질명장 지회장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품질경영 활동에 크게 기여

4

금호타이어()

허남근(40)

◦ 2000년부터 17년 4월 근무

◦ 표준화 실적 3품질분임조 전국대회에서 금상 수상등 6 수상, 974건 제안 752건 채택공정 및 품질개선 32건으로 5억 5천 8백만원 비용절감 효과를 거둠

 해병대전우회 연합회 활동을 통하여 교통봉사활동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

5

매일유업()

송근종(55)

◦ 1991년부터 26년 2개월 장기근속

◦ 표준화 실적 19제안 200공정개선 33품질개선 11건으로 3억 4천만원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며 생산성 향상에 기여

◦ TPM분임조 분임장을 맡아 설비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및 원가절감제품 품질향상에 기여


박종균 동구의원 "도시재생사업의 성공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비 촉구"

보도자료

 2017. 

 11.27()

광주 동구의회

報道資料

  

의회사무과

    

의정계장  

전화번호

608-3441

FAX

228-9718

 

 

제목 도시재생사업의 성공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비 촉구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박종균 의원은 255 정례회 1 회의에“도시재생사업의 성공과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비를 촉구”하는 5자유발언을 하였다.

 박종균의원은 쇠태하고 낙후된 구도심이나  도심을 대상으로 삶의질을 향상 시키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물리적 정비와 함께 사회적문화적경제적환경적 활성화를 통합적으로 추진하는것이라고 했다.

 박종균의원은 구를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남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계획하고 시행해온 도시재생사업의 효율적이 지속적인 추진  성과 도출을 위해 전담 행정 조직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며또한 주민 역량강화와 주민 교육  관련 프로그림을 획․시행하고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종균 의원은 중앙정부 사업에 공모해 정비구역으로 선정되고 각종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민간의 상생 협약과 제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마련되고 구청장님을 비롯한 공직자에게도많은 관심을 갖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2017.  11.  27.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5분 발언 

               

                                   

2017. 11. 27() 10:00

                                               255 동구의회 제2차 정례회

                                                   1차 본회의

 

 

 

 

도시재생사업의 성공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철저한 대비를 촉구하며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의 원 박 종 균

 

 

 

 

 

 

 

 

 

 

 

 

 

 

 

 

 

 

 

 

 

 

 

 

존경하는 10만 동구민 여러분!

박대현 의장님을 비롯한 동료 의원 여러분 !!

그리고 불철주야 “함께하는 나눔 동구”.

“도약하는 희망동구” 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시는

청장님을 비롯한 700여 공직자 여러분!

 

지원1.2.학운동 지역구를 둔 더불어 민주당

소속 박종균 의원 입니다.

 

저는 오늘 현재 진행중인 도시재생사업 성공과,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인 국가사업을

선점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당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쇠퇴하고 낙후된 구도심이나 원 도심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물리적 정비와 함께 사회적문화적경제적환경적재 활성화를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일.

기존의 노후되고 쇠퇴한 구도심이나 원도심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 주민들이 살아갈 공간의 질과

삶의 질을 높여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 도시재생 사업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 사업은

5년간 50조원의 공공 재원을 투입,

쇠락하는 도시들을 살리는 대대적인 사업을 하기로

되어있고 중앙정부에서는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구 정체노령인구 증가유소년 층의 비중 감소로  경제활동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노동력 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노인 부양비가 높아져 도시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초래하여 사업구조는 편중되고 도심의 쇠퇴화 현상이 심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2013년 6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으로

매년 100여개의 노후마을을 지정해 아파트 수준의

공공시설을 갖춘 열린 공동체 조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매년 10조원, 5년간 50조원의 공적 재원을 투입하여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개발 정비 사업과는 달리

주로 도로나 공공시설 등과 같은 편의시설을 공급하고 마을주차장 및 어린이집 조성무인택배 지원,

그리고 노후화된 주택을 매입하여 수리 후 공급시키는 등 도시재생 사업으로 39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연간 5만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저소득층, 고령층,신혼부부에게 공급하여 도심공동화를 막고 쇠퇴한 구도심을 살리며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중앙정부의 뉴딜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재개발 사업이나 뉴타운처럼

도로나 공원 등 기반시설을 다량 확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적지 않은

진통이 발생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동구를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남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계획하고 시행해온 동구의 도시재생사업의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추진과 성과 도출을 위해 전담 행정 조직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며 또한 지속적인 주민 역량 강화와 주민 교육 등 관련 프로그램을 계획·시행하고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 의원은 생각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집행부에서는 중앙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준비 사항과 진행 정도를 상시적으로 파악해서

우리 동구에 맞는 사업의 선제적 전략을 준비하여야

하며 신청 가능하고 실효성이 있는 소규모 정비대상 지구 등 사업을 발굴해서 계획과 정비의 틀을 준비해야 정부의 사업공고와 함께 즉시 신청을 해서 타 시군구보다 먼저 선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청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에서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본 의원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200억 이상이 투입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문제점과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우리 동구의 현실에 맞는 사업을 준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앙정부 사업에 공모해 정비구역으로 선정 되고 각종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민간의 상생 협약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속적인 도시재생 사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청장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그리고 동료의원님들의 관심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당부 드리면서 이상으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 11. 27

박종균 의원


광주 남구의회, 제2대 어린이․청소년 의원들! 겨울방학 이용 본회의 개최 전 사전 준비!

보도자료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의회마크.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16pixel, 세로 212pixel

   

제공일자

2017.11.27.()

남구의회 의정담당 류광용

(☎ 062-607-6082)

 

광주 남구의회, 2 어린이․청소년 의원들!

겨울방학 이용 본회의 개최  사전 준비!

 

광주 남구의회(의장 강원호)는 제2대 어린이․청소년 의회 (의장 박시현_대성초등학교본회의를 2018년 1월 12(예정개최한다고 밝혔다.

 

  2대 어린이·청소년 의원들은 내년 1월 본회의를 갖기 전, 12월에   두 차례에 걸쳐 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임시회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의 교육문화와 관련된 토론과 조례안 및 건의서안건제출 등에 따른 사전교육이 함께 있을 예정이다.  

 

  2대 어린이․청소년의회는 관내 초.중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지난 816일 구성했으며총 27명의 어린이·청소년들이 각각 구의장구의원구청장집행기관 간부 등 역할을 분담해 실제 회의와 동일하게 진행하고 있으며어린이 모의의회 체험도 연중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어린이·청소년 의회에서 제안된 조례안 및 건의안 등은 검토를 통해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여 향후 해당 상임위원회에 전달의정활동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한편3대 남구 어린이•청소년의회 구성은 2018년 6월부터 관내 초․중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구성할 예정이며임기는 1년이다.

광산구 2년 연속 ‘통계조사 유공기관’ 선정

보도자료

 일시 : 2017. 11. 27.

 담당 나기형 통계분석팀장

 연락 : 960-8075

광산구 2년 연속 ‘통계조사 유공기관’ 선정

 

광주 광산구(구청장 민형배)가 2년 연속 ‘통계조사업무 유공기관’에 선정돼 다음 달 21일 기획재정부장관상을 받는다.

통계는 중앙·지방정부 정책학술연구기업경영의 방향과 목표를 잡아주는 중요한 원천 자원이다양질의 ‘원천 자원’ 확보를 위해 광산구는 지역의 지표를 수집해 이면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해왔다특히 선운지구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고여기에 연동해 각종 산업 또한 증가하는 변화의 핵심을 통계에 담는데 힘써왔다.

이런 상황에서 광산구는 조사원의 역할에 주목했다현장에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조사원의 능력이 통계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예컨대 광업이나 제조업 조사의 경우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원이 몇 차례 사업체를 방문해야 한다해당 사업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조사원이라면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는데 유리하다.

광산구는 공모를 거쳐 조사원을 모집해 인터뷰 기법친절 응대산업별 정보 등을 교육했다현장에는 신규 조사원과 베테랑 조사원을 함께 파견했다현장을 서로 달리 보는 시각을 공유하고조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광산구는 이런 노력이 ‘2016년 지자체 우수정보시스템 선정’2017년 정부혁신 거점지자체 육성 공모사업 선정’‘지역정보화 연구과제 발표대회 행정안전부장관상 수상’ 등으로 이어졌다고 자평하고 있다.

광산구 관계자는 “올바른 국가정책삶에 도움 주는 과학행정을 구현하도록 통계 업무의 질과 범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광산문화예술회관, 신형철 포엠콘서트 ‘시, 재즈로 읽다’ 29일 개최

보도자료

 일시 : 2017. 11. 27.

 담당 이현숙 문화기획팀장

 연락 : 960-8257

남도의 시에 화답하는 재즈와 국악

광산문화예술회관신형철 포엠콘서트 ‘시재즈로 읽다’ 29일 개최

 

광주 광산구(구청장 민형배)는 11월 문화가 있는 날 특별기획으로 29일 저녁 730분 광산문예회관에서 신형철 포엠콘서트 <(), 재즈로 읽다>를 개최한다이번 공연은 광산구가 마련한 올해 마지막 하우스콘서트다.

공연은 관객이 시를 낭송하면 신형철이 해설하고재즈와 국악으로 다시 시를 읽고 음미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문학평론가이자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신형철은 197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5년 봄에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해 평론을 쓰기 시작했으며, 2007년 최연소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그의 700페이지짜리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는 평론집으로는 드물게 20쇄를 넘겼고산문집『느낌의 공동체』와 영화에세이『정확한 사랑의 실험』도 꾸준히 읽히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타평론가’이다.

신형철은 시의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남도의 지역성을 되새기는 작품으로 영랑 김윤식용아 박용철황지우한강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제2의 김현’으로 불릴 만큼 미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신형철이 그만의 섬세한 언어로 시인의 마음과 시의 행간을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관객의 시 낭독과 평론가의 강연 사이에 퓨전재즈밴드 ‘더블루이어즈’와 프로젝트 그룹 ‘한충은&Forest'가 출연해 각각의 시와 어울리는 재즈곡을 선보인다특히2013년 KBS국악대상 연주 관악상을 수상한 대금 연주자 한충은의 프로젝트팀은 재즈풍 국악의 매력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이날 공연은 광주국악방송 ‘주홍의 무돌길 산책’과 협력 진행하며 추후 국악방송 라디오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공연은 초등생 이상 누구나 관람가능하며 현재 광산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에서 예매중이다행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광산구 문화예술과(062-960-8833)에서 한다. <>

 공연 포스터  관련 사진 파일 별첨